유수지 개인전 «To Face the Unknown»
이운 개인전 «숲과 호수에 두고 온 시»
전시 서문
- 풍경을 잇기, 연결하기, 틈을 벌리기
2024.07.12. - 07.28
2024.08.02. - 08.18
갤러리인 HQ

가까스로 닿은 여름은 익숙하고도 낯설다. 밤보다 낮이 긴 계절, 달리 말해 밤이 짧은, 햇살이 따갑고 나뭇잎이 무성한 계절. 이 계절의 풍경을 이루는 것은 공기와 빛, 끈적임과 풀 내음 같은 감각이기에, 쉬이 언어로 붙잡을 수 없다. 사실 모든 계절의 무수한 풍경은 언어화 되기 전에 저 멀리 사라진다. 피부와 숨결로 와 닿는 풍경을 특정한 단어와 문장으로 옮겨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풍경은 흘러가고, 언어는 멈춰 있다. 이런 때마다 떠올리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이다.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계절, 언어가 담을 수 없는 풍경을 그린 그림. 거기에는 풍경이 심상으로 전환되던 때의 순간이 새겨져 있다. 애써 노력하지 않고도, ‘그린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순간을 지속시키곤 한다. 유수지와 이운은 각자가 머무는 곳에서 그러한 행위를 이어왔다. 갤러리 인 HQ는 7월과 8월, 두 작가의 개인전을 각각 1부와 2부로 나누어 선보인다. 이들의 그림에서 떠나온 곳과 머무는 곳의 풍경은 따로 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시제로 연결된다.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 시차를 두고 연달아 열리는 유수지와 이운의 전시는 어떤 풍경에 도착하게 될까? 익숙한 장소에 담담한 안녕을 고하며 낯선 풍경을 잇는 유수지, 섬세한 시선으로 안온한 풍경을 그려내는 이운의 그림을 감상하며, 이 여름의 풍경을 충만하게 감각하길 바란다.
1부: 풍경과 풍경을 잇는 것 – 유수지와 바다
유수지는 긴 시간 머물던 동네를 떠나 낯선 곳으로의 이동을 앞두고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바다는 그가 늘 자신과 멀다고 생각했던 장소이다. 그러나 당면한 상황은 자꾸만 먼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아직 알지 못하고(未知), 아직 오지 않은(未來)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는 가뿐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보다 두려움을 등에 짊어진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히 옮기는 모습에 가까웠다. 유수지는 잠시 지나쳤던 바다의 모습을 복기하여 재조합하고, 붓을 들어 물감을 얹고, 다시 긁어 내기도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내 축적된 걸음의 밀도는 익숙한 곳과 낯선 곳의 경계를 흐렸다. 비로소 복잡하고 불확실했던 풍경은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과 모양으로 치환된다. 그의 그림 안에서 떠나올 곳과 도래할 곳의 풍경은 이렇게 이어졌다.
한편 화면을 가득 채운 풍경과 달리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은 ‘다음’을 대하는 유수지의 태도를 은유한다. 이들은 유약한 몸으로 거센 파도를 넘어(<Suffer>(2024)) 빗속을 뚫고 걸어가거나(<I'm not Afraid>(2024)), 폭풍을 맞이하고, (<폭풍 속으로>(2024)), 무지개를 옮겨내고야 만다(<무지개 옮기기>(2024)). 각각의 풍경을 이루는 계절과 날씨, 낮과 밤의 시간은 바다를 두고 지나갈 뿐이다. 이 반복과 변화에 맞서 유연함을 견지하도록 해주는 것은 뭉근한 연결의 감각일 테다. 어제와 오늘, 떠나온 곳과 도착한 곳, 그 풍경 속의 너와 내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감각. 유수지는 파스텔, 유화 물감, 색연필과 같은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하나로 섞여 단단하게 이어질 때까지의 지점”을 끝맺음의 기준으로 둔다.1) 이를 통해 그는 그림 안쪽의 요소들을 촘촘히 엮어내고 다음 작업으로 향하는 걸음을 뗀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보내온 <정림동 작업실>(2024)에는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다 풍경이 그려져 있다. 비록 그곳을 떠나오더라도, 풍경은 그곳과 이곳, 다시 저곳을 이으며 다음으로 걸어가도록 해줄 것이다. 다음과 다음의 다음, 또 다음으로.
2부: 휴지(休止)의 공간 – 이운의 좁은 틈
이운은 한때 노마드(nomad)를 꿈꾸며 여행했던 곳들의 풍경을 재구성하여 그린다. 그가 풍경과 맺는 관계는 오래도록 바라보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늘 예고 없이 마음에 다가오는 풍경을 맞이할 때면, 그는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풀과 나무, 하늘과 같은 평범한 풍경의 면면이 생경하게 다가올 때까지. 이 틈을 찾아내는 것은 풍경으로부터 차오르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은 뒤 다시 덜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비슷한 풍경 속 미세한 변화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흐름을 발견하며, 이운은 자신만의 풍경을 길어 올렸다. 이는 그리기 전까지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한데, 그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 그 속의 자연물들을 실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조합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나직하고 조용한 시선은 그 풍경을 있을 법한 풍경으로, 고유한 세계로 비춘다.
이운이 그리는 풍경은 일종의 방공호이기도 하다. 먼 타국의 유목민 가족과 머물렀던 마을, 황량한 사막에서 발견한 작은 꽃이 마음에 위안을 주었듯, 그는 자신이 그리는 풍경이 누군가가 걸어 들어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실제로 그림은 흐릿한 윤곽과 옅은 농도의 붓질로 다른 시선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둔다. 간간이 등장하는 인물조차 풍경의 일부가 되어 그림에 녹아 들어 있다. 마치 넓은 행간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는 시처럼, 이운의 풍경은 이 벌어진 공간의 빈 틈으로 관객을 불러온다.
최근 이운은 꽃과 식물을 보다 적극적인 풍경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식물을 멈춘 듯한 시간, 혹은 멈추고픈 시간에 두고 사람을 마주보듯 바라보며 그린 그림들이다. 이는 살아있는 식물의 시간을 그림 안에 동결시키기도 하지만, 조화와 같이 살아있지 않은 대상을 살아있는 순간의 일부로 끌어 오기도 한다(<Still Life with Artificial Flowers>(2024)). 이 정지된 순간 속에서, 지나온 풍경과 오늘의 풍경, 언제나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의 간격은 좁혀진다. 오랫동안 어루어 만지듯 천천히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1) 유수지 작가노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