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개인전 《둥근 돌로 쌓는 탑》서문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1)
2024.08.27 - 09.05
영공간
이야기는 2년 전, ‘천개의 섬’이라 이름 붙여진 군도의 한 작은 섬에서 시작되었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알려진 이 섬은 임현정에게 몇 장의 사진과 기억으로 남았다. 섬에 머무르던 때로부터 무수한 일몰을 지나온 오늘, 몇 장의 사진과 기억은 기다란 천 위의 이미지로, 느린 영상으로, 단단하거나 무른 속성을 지닌 크고 작은 덩어리로 소환되어 지금 여기에 다다랐다. 애써 간직하던 것을 오래도록 곱씹어 꺼내 놓기까지, 임현정은 최초의 잔상을 온전히 부지하기는 커녕 공들여 변형해왔다. 원형의 테두리를 조금씩 비껴가며 변화를 거듭한 뒤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들. 나는 이들이 경유해온 변모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었다.
시작은 예사로웠다. 맞닥뜨린 무언가를 습관적으로 찍고, 찍는 동시에 수집하는 일. 다만 핸드폰 앨범 어딘가에 붙박여진 여느 사진과 다르게 임현정이 찍은 사진들은 현재의 서술적 기억2) 을 기제로 분류되었다. 이때 사진의 의미는 찍힌 시점이 아닌 기억하는 현재로 자연스럽게 유보된다. 다음으로 과거와의 오차를 품은 채 분류된 사진은 디지털 툴을 통해 편집되는 과정을 거친다. 곧 기존의 피사체가 지니고 있던 일말의 의미조차 소실되고 나면, 뒤틀리고 왜곡되어 탈바꿈된 사진은 ‘이미지’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영상의 형식으로 이행해간다. 여기서 멈췄다면 임현정의 작업은 우리 주변을 떠도는 ‘빈곤한 이미지'3) 의 일부, 또는 그 일부를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크린에 부유하던 이미지는 다시금 부피와 무게를 가진 물질의 영역으로 뻗어 나간다. 마침내 이미지로부터 연상된 기억은 굴곡진 표면을 가진 오브제의 몸으로, 각자의 피부를 맞댄 군집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하나의 지지체에 정주하지 않고 물질과 비물질, 과거와 현재를 왕래하며 파생을 반복하는 임현정의 작업 과정에는 저마다의 시차가 자리한다. 이를테면 사진을 찍을 때와 일정한 밀도로 축적된 사진을 분류할 때, 분류된 사진을 다른 맥락의 이미지로 재조합 할 때와 가공된 이미지를 손으로 주무른 오브제로 호명할 때, 다시 더미를 쌓아 올릴 때의 시간 사이에 겹겹이 벌어지는 낙차들. 여러 층위의 시간들 속에서 사진-이미지-오브제는 선형적인 흐름 위에 안착하기보다 서로를 앞지르거나 뒤따르는 방식으로 뒤섞인다. 이 시차 안에서 유실되거나 새롭게 생성되는 것들은 언어로 서술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어느 시공간 또는 시공간에 귀속된 사건을 표지(標識)한다.
그런데 각각의 과정을 세분하고 제시된 작업 간의 시차를 되짚을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개별 작업에 부여된 의미가 아니었다. 한정된 시간 동안 마련된 이 공간에서, 작업은 “정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에서 나아가 대상과 대상, 대상과 나, “공간과 시간의 새로운 관계”를 비추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4)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성에 기반한 이 관계는 “나와 너의 인과적 연결”을 넘어 “나와 그들(타자), 나와 그것(사물)을 연결해줄 것이다."5) 이러한 까닭에, 나는 임현정의 작업적 함의가 각기 다른 매체의 특정성보다 이들 사이에 맺어지는 가변적인 관계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서로를 참조하고 유예하며 일구어지는 관계 속에서 작업은 그 모양새를 유연히 바꿔 나갈 수 있었다. 직접 찍은 사진만을 작업의 고유한 재료로 삼는 이유 또한 이 관계 맺기에 있다. 임현정은 외부 세계와 불가분하게 연결된 것으로서의 사진, 즉 렌즈를 기반으로 피사체와 맺어진 자신의 관계-기억을 집요하게 끌고 간다.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며 이어진 결속을 바탕으로 임현정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긴긴 변화의 궤적을 밟아가는 어귀마다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곤 했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미지를 통제하는 주체의 장소로부터 물러나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의미심장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무언가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연상하는 과정”이 스스로의 “감각을 믿는 특수한 상황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라면, 이 “감각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생경함을 경험한다.”6) 그렇다면 임현정의 작업은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경유하는 ‘믿음’을 뒤흔들며, 뭉근히 지속되는 생경함을 되풀이하여 발생시키는 일과 다름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파생된 결과물의 기원에 무엇이 놓여 있었는지의 여부, 달리 말해 감춰진 유무형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부가 아니다. 고정된 답을 유보하고 최초의 사건을 지연시킴으로써 당도한 곳에는 은유의 수사로 가득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임현정은 말하기를 멈추고 묻는다
: 주어진 차원에서 끝끝내 알 수 없는 저 진실을 뒤로하고, 당신은 지금 여기서 마주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압축된 주의력, 몰입보다는 인상, 사색보다는 강렬함, 상영(screenings)보다는 미리보기로 번성하는 정보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믿을) 것인가?7)
전시장 중앙에 놓일 ‘탑’의 모습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임현정은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우리의 믿음과 보기, 유약한 진실의 속성을 ‘둥근 돌로 쌓는 탑’에 비유한다. 비록 위태롭고 불안정할지라도, 전시가 열릴 시점에 구태여 쌓일 탑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부단히 변화하는 의미의 망 사이에서, 가라앉은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기를 염원하며, 탑은 무너지고 쌓이기를 반복할 것이다.
1) 임현정의 작업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어느 영화 대사에서 인용했음을 밝힌다.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
2)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 또는 서술 기억은 장기 기억의 한 종류로, 동명의 동물을 닮은 뇌의 해마에 저장된다. 무의식적으로 저장되는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과 다르게, 서술적 기억은 의식적이고 주도적으로 남아있으며 언어의 형태로 서술 가능하다.
3)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끊임없이 업로드, 다운로드, 재포맷, 재편집되며 순환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그 속성을 가리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라 칭한다.
4) Boris Groys, “Introduction: Global Conceptualism Revisited,” e-flux, no.29 (November 2011).
5) 여경환, 「여는 글: 회화X이미지의 미래」,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 수천개의 작은 미래들로 본 예술의 조건』, 현실문화A, 2018, p.15.
6) 임현정, 작가노트 中.
7) 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e-flux, no.10 (November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