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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원 개인전
«Sync»

Homeward Bound...


2025.04.24 - 05.24
Project Native Inform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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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ward bound
I wish I was homeward bound
Home, where my thought’s escaping
Home, where my music’s playing
Home, where my love lies waiting silently for me

- Simon & Garfunkel <Homeward Bound>1) 


 

       여기 삶에 근거하기보다 삶이 근거하는 이미지가 있다. 삶 자체가 하나의 상(image)이 되어, 이미지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세계. 안태원은 줄곧 이 세계의 현실 – 또는 유사-현실 – 속 모든 불확실함 가운데에서도 믿을 만한 지반이 되어주는 존재를 그려왔다. 그가 키우는 고양이 ‘히로(hiro)’는 그의 삶을 이루는 가장 구체적인 존재다. 히로로 하여금 안태원은 현실에 닻(anchor)을 내리고 살아가는 실존을 감각한다. 이렇듯 실재하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한 계기이자 통로로서, 히로는 안태원이 속한 세계-이미지이자, 동시에 그 세계-이미지가 속하는 존재다. 이때 삶과 상, 현실과 환영으로서의 이미지를 이분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배태하지 못한다. 대신 안태원은 각각이 기거하는 ‘공간’을 인식하고 이를 동기화(synchronize)함으로써 상호 존재감을 가시화하기로 했다.2)  《Sync》는 히로 이미지가 거주하는 그림과 조각, 그와 히로가 함께 머무는 서울의 집, 그리고 한시적으로 조성될 런던의 전시장을 한데 겹쳐 본다. 지척에 놓인 세 공간은 안태원이 계속해서 돌아가게 될, 집으로 향하는(homeward) 길목에서 ‘보는 이’들을 초대한다.

       실재하는 히로의 이미지를 그림과 조각의 몸으로 이식해온 과정은 이미지의 즉물성을 활성화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안태원이 인지한 세계를 조형 언어로 전환하는 행위는 주로 사물(object)의 표면에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히로를 그리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여기서 ‘사물’이란 특정한 너비와 부피, 무게를 가진 현실의 대상, 표면이란 해당 사물의 겉을 이루는 면으로, 캔버스 천부터 나무 판넬, 에폭시와 우레탄 폼까지 다양한 범주를 아우른다. 히로 이미지는 각 표면의 질감과 굴곡, 외양에 따라 일종의 밈처럼 왜곡되고 복제되었다(<Hiro is everywhere>). 그러나 과거의 작업이 히로를 염두에 둔 채 사물과 표면의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면, 근래의 작업은 우연적인 형상을 바탕으로 히로의 모습을 ‘포착’해 나간다. 안태원은 이미지가 놓일 표면을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둔 뒤, 즉흥적인 발견을 통해 그것을 덧씌운다. 이를테면, 그는 발포 배수가 다른 연질 우레탄 폼을 부풀린 다음, 묽은 아크릴 미디엄과 물감 층을 여러 차례 쌓아 올려 자연스러운 흐름을 형성하도록 그대로 건조시킨다. 그리고 우연히 만들어진 색과 형태에서 히로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려 넣는다(<Hiro 1-14>).3)  우레탄 폼이 경화되고 물감이 마르는 시간, 각 레이어가 섞이거나 분리되는 양상은 완성된 결과물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때문에 축적된 표면 위에 베일처럼 씌워지는 히로의 이미지는 배경과 형상이라는 공간적 구조를 획득하게 된다.

       이처럼 특정한 인과 관계 아래 이미 실재하는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보(고자 하)는 안태원의 태도는 ‘수집’보다는 ‘채집’의 행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이폰 앨범에서 선별된 히로의 사진은 사물의 잠재적인 형태에 연동됨으로써 고유한 형상과 몸을 얻는다. 의도와 목적을 전제로 제작된 이미지가 아닌, 발견과 선택의 공정을 거쳐 획득한 이미지는 범속한 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안태원은 이처럼 원본이 되는 히로의 사진과 그 지지체 사이에 서서 멀리 떨어진 시공간을 동기화한다.

       <형광등(Fluorescent lamp)>은 ‘폴리캠(Polycam)’이라는 3D 스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생성한 집 이미지를 배경으로 삼은 작업이다. 앞서 <Hiro 1-14>가 물감 입자의 물질적인 우연성을 기조로 했다면, <형광등>은 디지털 어플리케이션의 한계로 발생한 오류와 그 결과값인 그래픽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평면의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나 명암을 입체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도출해낸 3D 이미지가 그 예이다. 거듭, 안태원은 일그러진 집 이미지에서 히로의 얼굴을 본다. 나아가 이러한 배경과 형상이 안착한 직사각형의 캔버스에서, 다시 집의 신발장과 거실을 나누는 유리문의 풍경을 본다. 그의 작업에서 발견된 이미지가 결여하고 있는 것, 결여된 것에 투사된 ‘보기’의 욕망은 이미지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의 형태를 취한다.4) 더하여 물성을 지닌 사물, 물리적인 공간으로 재차 돌아가는 이미지의 관성은 그 질량의 크기와 비례하는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안태원의 세계-이미지에서, 그가 보고자 하는 것은 곧 그가 보는 것이다.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곧 그가 서있는 곳이다. 히로와 히로가 머무는 집으로, 그들이 옮겨 간 그림과 조각으로, 그것들이 놓여 있는 전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잡념은 사라지고(where my thought’s escaping)”, 세계는 – 이미지는 –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는다.

 

1)  <Homeward Bound>는 포크 록 듀오인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두 번째 정규 앨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1966)에 수록된 곡이다. 곡의 작곡자이자 멤버인 폴 사이먼(Paul Simon)은 영국에서 투어를 돌던 중 고향인 뉴욕을 그리워하며 이 곡을 썼다.

2) 여기서 ‘동기화’는 두 개 이상의 시스템에서 시간이나 상태 등을 맞춰 일치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안태원은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른 공간과 사물에서 자신의 세계-이미지를 동기화한다. 전시 제목인 ‘Sync’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쓰였다.

3) 한편, <Gap>(2025)에는 히로 이미지가 올라가기 전, 우레탄 폼과 물감 층으로 이루어진 배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서 무엇을 볼지는 각자가 돌아가고자 하는 곳의 몫으로 남는다.

4)  “이미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이미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이미지가 결여하고 있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채워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욕망을 이미지에 투사하는가?” W.J.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 이미지의 삶과 사랑』, 김유경 옮김 (서울: 그린비, 2010),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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