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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박주연
«Air Time»
껍데기의 안팎에서, 추락을 꿈꾸며 


2025.2.26 - 3.9
옥상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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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자주 꾸던 추락의 꿈을 기억한다. 공중에 던져진 순간 느꼈던 이질적인 감각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저릿하게 남았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찰나에 발생했던 감각. 그 짙은 느낌을 ‘에어 타임(Air time)’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더이상 그 꿈을 꾸지 않을 때였다. 실제 물리적인 낙하의 순간에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이 감각은 마치 무중력 상태로 붕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1)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즉 중력이 상쇄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에어 타임은 역설적이게도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인식케 한다. 전시 《에어 타임》은 보이지 않는 힘처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것들, 과잉된 정보와 감각 속에 짧게 스쳐가는 것들을 되새긴다. 반복과 중첩, 수집과 기입을 통해 이루어지는 김예진과 박주연의 회화는 공백을 메꾸기 보다 그 ‘비어 있음’을 경유하여 무언가가 ‘있(었)음’을 상기한다. 이는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며 거듭 추락하는 일, 발 딛을 시간을 유예하며 불안정한 공중 속에 머무는 일이기도 하다.

            

           김예진은 언뜻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흔적과 그로 인한 연쇄 반응을 포착한다. 신체와 사물 사이, 또는 그들 각자의 일시적인 움직임은 특정한 자국을 통해 가시성을 획득한다. 얇은 껍데기처럼 잔존하는 자국은 알맹이의 행적을 암시하는 시간의 단면이다. 김예진은 이 시간-껍데기를 주워 모아 과거를 파내려 간 뒤, 다시 현재 마주한 캔버스에 쌓아 올린다(<Digging a well>).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누군가의 사사로운 버릇이나 흔적에 깃든 시간이다(<00:00 손톱을 뜯는다>, <00:01 00:03 00:04>). 이를테면 불안한 상황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꼬거나 손톱을 뜯는 버릇, 당겨야 열리는 문을 연거푸 밀면서 발생한 흔적의 누적된 시간들. 이 시간은 돌발적인 순간이 아닌 얼마간의 시간이 축적되어야만 드러나는 구체적인 순간(들)이기에, 자연스레 겹겹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껍데기의 앞과 뒤, 전후의 맥락을 층층이 쌓아 그려낸 김예진의 그림은 순간이 지속되는 흐름, 여러 장면과 사건이 전개되는 시퀀스의 일부로 작동한다. 한편 일련의 과정은 시각적 단서가 전제로 하는 접촉의 표면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김예진의 회화가 종국에 도달하는 곳에는 두께와 질감을 가진, 손에 잡히는 껍데기(들)이 있다. 작업의 시간과 또 다른 단차를 두고 마련된 전시장에서, 오고 가는 시선들이 배양할 감각은 그들이 투사할 장면의 몫에 주어질 것이다.

 

           박주연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세계의 표면 뒤에 가려진 것들, 그 껍데기의 이면에 관심을 둔다. 멀리서 바라본 껍데기의 바깥은 일종의 차폐막으로 기능하며 흠결 없는 외양을 내세운다. 이곳에 주변부(margin)로 밀려나 침전된 것,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의 자리는 없다. 박주연은 답보 상태에 놓인 세계에서 그 괴리를 증언하는 이미지로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글리치 현상을 제시한다. “의도되지 않은 결과값”인 글리치는 정보가 흘러 넘치는 중심부-바깥과 데이터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변부-안쪽의 격차로 인해 발생한다.2) 현실에 드러나지 않던 누락된 알맹이들의 존재가 왜곡되고 뒤틀린 이미지로 전면에 노출되는 것이다. 박주연이 ‘허깨비 마당’3) 이라 비유하는 이 이미지들은 실재하지만 오히려 허상에 더 가까운 세계의 얇은 껍데기를 가시화한다. 구겨진 건물(<물길>), 바다 한 구석에 뚫린 구멍(<바다 구멍>)과 형체를 알 수 없이 조각난 디지털 풍경은 그의 작업에 의해 현실의 사물로 이주한다. 미끄러운 액정의 화면에서 요철을 가진 종이와 린넨의 표면으로, “하늘의 빛깔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밤이 오지 않는”3) 세계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천연의 세계로. 이곳은 구멍 뚫린 실재가 묻힐 결함의 무덤이 아니다. 여기서 불완전한 이미지가 지닌 틈과 공백은 새롭게 채워질 여지를 품는다. 나아가 일말의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박주연의 회화는 재료의 물성을 바꿔가며, 의도했던 색과 형태의 범주를 벗어나 통제할 수 없이 발생하는 우연을 기꺼이 수용한다. 이는 또다른 구멍, 구멍 너머의 세계를 열어두기 위해 자처한 난관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 아니라,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위태로운 현실 속으로 몸을 던질 용기일지도 모른다.

 

 

1)  ‘에어 타임(Air time)’은 공중에 떠 있는(듯한) 순간의 감각과 물리적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우리 몸을 지탱해주는 바닥 없이 자유 낙하할 때, 사라지는 것은 중력이 아닌 땅의 지지력(Normal Force), 그리고 그로부터 느낄 수 있는 몸의 무게이다.
 

2) 구글 어스는 지리적 데이터를 시각화한 지리 벙보 시스템(GIS) 중 하나이다. 이 디지털 지도는 지구지구의 지형을 형성하는 3D 모델링 데이터,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 비행기, 인공위성에 의해 촬영된 2D 데이터, 머신러닝 기술과 사용자의 참여로 만들어 진다. 이때 주요 도시의 건물과 지형 외에 기술적, 경제적 이유로 데이터가 부족한 영역에는 변칙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3) 허깨비 마당은 물리학의 경로적분(Path Integral)에서 활용되는 가상의 입자이다. 오로지 경로적분의 계산을 완결하기 위해 도입되는 수학적 도구로서, 물리적으로 실재지 않지만 꼭 필요한 보조 개념이다.

4) 박주연 작가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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